10월 06, 2022
겸재 정선과 순심 | 비단 화첩에 아롱지는 한국의 미와 감정가
겸재 정선과 한국 영혼의 일부인 「겸재정선화첩」이 80년 만에 고국 순심교육재단이 소속된 왜관 성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1676년(숙종 2)에서 1759년(영조 35)에 걸쳐 활동한 후기 조선 시대 화가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의 대표적 화가이다.
진경산수(眞景山水)는 실제의 야외 사생을 통해서 그려지는 실경산수화를 말한다. 기존에 그려진 화첩 등에 의한 관념과 중국의 남종화와 북종화의 외래적인 영향에서 탈피하여 순수한 한국적 회화를 지향한 사례로써 의의가 크다.
겸재 정선은 조선 일대를 여행하면서 산수화의 소재를 섭렵하여 한국의 산세와 송림에 맞는 수직 준법과 독특한 필치로 중국화와 확연히 다른 산수화의 기법을 창시하여 「겸재정선화첩」을 비롯해서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통천문암도 등의 걸작을 남겼다.
겸재정선화첩
화첩은 진경산수화와 산수 인물화 13점과 8점의 고사화와 고사 인물화 총 21점이 바단 화폭에 그려져 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제작된 다양한 주제와 화풍은 정선 특유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어 정선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독일로의 여정
독일 상트 오틸리엔(Sankt Ottilien) 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 (Norbert Weber, 1870∼1956) 총아빠스(대원장)는 1908년 두 명의 선교사를 조선에 파견하고 백동 수도원(현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을 만들었다. 수도원 시찰을 위한 두 차례(1911년과 1925년)의 조선 방문 중, 두 번째 방문인 1925년 귀국 당시 「겸재정선화첩」을 출처 미상의 곳에서 수집하고 가져간 것으로 추정된다.
상트 오틸리엔 박물관
독일 남부 뮌헨 남서쪽에 있는 상트 오틸리엔(Sankt Ottilien) 수도원은 외방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수도원 연합체의 중심이다. 1884년 1월 6일 안드레아스 암라인 신부가 베네딕도 수도원 건물에서 시작하였다.
뮌헨에서 광역전철 종점인 겔텐도르프 역에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는 아름다운 곳에 있는 수도원이 불과 1세기에 불과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유럽 최고의 수도원으로 부각 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교박물관에는 선교사들이 전 세계적인 선교지에서 수집한 각양각색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프리카의 동물박제를 비롯한 한국의 화투짝까지 전시된 점을 미루어 보아 수집량의 다양성과 방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2005년 10월 29일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겸재 정선의 화첩이 80년간 이곳에 소장된 점도 같은 맥락으로 유추된다.
화첩의 감정가
왜관 수도원의 '겸재정선화첩' 가격은 알려진 바 없으나, 2000년 미국 덴버미술관의 '케이 E. 블랙'과 독일 '킬대 에카르트 데게 '교수에 의해 이 화첩에 관한 논문 발표에 이어 경매회사인 뉴욕 크리스티사가 구매를 목적으로 제시한 한화 50억 원이 금전적 가치로 추산될 뿐이다.
화첩의 귀환
1975년에 당시 독일을 유학 중이던 전 이화여대 유준영 교수의 발견과 논문으로 「겸재정선화첩」이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인 왜관수도원 선지훈 신부의 노력으로 2005년 10월 22일 영구대여 형식으로 반환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고, 영인본(특수 촬영 기법 복사본)이 왜관 성 베네딕트 수도원 역사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국에 최초로 설립된 백동수도원이 1927년 강원도 문천군으로 옮겼다가 북한 당국에 의해 1949년 폐쇄된 이후 왜관으로 피난 차 옮겨 온 것이 왜관수도원이다. 왜관수도원은 순심교육재단 운영등 다방면에 걸쳐 지속적인 선교사업을 하고 있다.